

..붉은 우산 아래에서..
햇살이 반짝이는 오후였다.
테라스 끝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손에 들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들었다가 문득 손을 멈췄다. 무언가 나를 위로 이끄는 힘이 있었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을 때, 내 위로 펼쳐진 세상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붉은 파라솔이 만든 그늘 너머로 초록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연두빛 새잎과 짙은 녹색 잎사귀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햇살을 머금고 있었고,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부서지는 빛은 눈부시면서도 따스했다. 그 배경에는 더없이 맑고 푸른 봄 하늘이 무한히 펼쳐져 있었다.
이토록 단순한 조화가 마음을 이렇게나 평온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바쁘게 달려온 지난 날들이 잠시 멈춘 듯한 느낌.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고요한 확신이 밀려왔다.
붉은 파라솔 아래 이 작은 공간이 나만의 섬 같았다. 바깥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안전한 울타리. 그 안에서 나는 온전히 나였다. 누군가의 아들도, 누군가의 동료도 아닌, 그냥 이 순간을 느끼는 한 사람으로서.
바람이 잎사귀를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새소리도.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잎사귀들도 나와 함께 호흡하는 것 같았고, 바람은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는 듯했다.
문득 핸드폰을 꺼내 하늘을 찍었다.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면서도. 이 따스한 공기, 나뭇잎의 속삭임, 그리고 무엇보다 이 평온함까지는 담을 수 없으니까. 그래도 찍었다. 언젠가 이런 순간들을 잊을 때, 다시 기억하고 싶어서.
사람들은 늘 위를 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를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희망은 멀리 있지 않았다. 파란 하늘과 녹음 사이를 가르며 퍼지는 봄날의 빛,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내 시선 속에 있었다.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늘 너무 많은 것을 갈망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화려한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이처럼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때로는 잊고 지낸다.
오늘 마주한 봄날의 하늘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서라는 자연의 작은 속삭임이었다. '괜찮다,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그렇게 따스하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때 그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오늘도, 내 안의 봄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봄이 이렇게 찾아오는구나. 화려한 꽃으로도, 요란한 새소리로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조용히, 붉은 우산 아래 한 조각 하늘로.